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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수학 이야기

비운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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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로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중고등학교 시절엔 미적분학을 독학하여 어려운 문제만 붙들고 있고 앨런 튜링을 좋지 않게 평가한 선생님이 많았다고 한다. 16세에 크리스토퍼 모컴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모컴은 지식이 풍부하고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여 둘은 단짝이 되었으나 모컴이 1930년 소결핵균으로 사망하게 되자 모컴의 뇌에 있던 지능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 방법을 고민하다가 계산이론을 창안하게 된다. 영화 앨런 튜링을 소재로 한 영화의 제목이 Imitation game인 이유도 Imitation은 모조, 짝퉁이란 뜻을 갖는 데 인간 뇌의 유사품, 모조품을 만들고자 했던 생각 때문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란 발상을 처음으로 한 것이다. 앨런은 모컴이 죽은 후 다른 친구들은 너무나 평범해서 사귀기 어려웠다고 한다. 
앨런 튜링은 케임브리지대학교 재학 중인 1936 <On Computable Number, With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이란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튜링 머신 이론과 노이만형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튜링 머신은 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앨런 튜링은 실현에 실패하였지만 얼마 후 폰 노이만에 의해 실현되어 지금의 컴퓨터가 되었다.
앨런 튜링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때 존 폰 노이만과 친분을 다졌다.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로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미국에서는 불법이 아니었기에 폰 노이만은 미국에 남기를 권유하지만 앨런 튜링은 영국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귀국한다. 귀국 후 튜링은 1939년 영국의 블레츨리 파크에 위치한 국가암호해독기관 GCCS(Government Code & Cypher School)에 참여하여 독일의 악명 높은 군단급 암호기인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코드명 ‘울트라’를 진행하면서 봄브(Bombe)를 개발하였고 에니그마보다 더 성능이 우수한 로렌츠 암호 전신기를 해독하기 위해 이 연구기관에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연산 컴퓨터인 콜로서스를 만든다. 
1950년엔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를 발표하였는데 인공지능이란 개념을 처음 생각하고 광범위한 사용을 예측하였다. 논문 속에서 튜링 테스트라는 인공지능 실험을 제안하였는데 튜링 테스트는 이미테이션 게임이라고도 불리는데 기계가 인간과 대화를 통하여 기계의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시험으로 질의한 내용에 대하여 인간과 기계가 응답을 키보드로 하여 어느 쪽이 기계인지 인간인지 구분이 안 되면 통과하는 테스트이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 심리철학의 기능주의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전쟁 후 동성애자인 앨런 튜링은 한 남자와 사귀게 되었는데 그 남자의 일행에게 도둑을 맞게 되어 사귀던 남자를 경찰에 신고하였다. 이 일로 동성애자인 것이 밝혀지게 되면서 범죄자가 된다. 그동안의 공로는 밝혀지지 않은 채 범죄자로 취급받게 되면서 최고의 전산학자인 튜링이 정보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하여 소련의 스파이라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앨런 튜링은 동성애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법원에서 그동안의 공로를 어느 정도 인정하여 수감형 또는 화학적 거세형으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주입받는 것 중 선택할 것을 명령받았다. 앨런 튜링은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수감형이 아닌 화학적 거세형을 선택하였으나 자신의 신체가 여성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1954년 41세 나이로 자살한다. 앨런 튜링의 사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앨런 튜링이 청산가리가 주입된 사과를 먹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명확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다.
앨런 튜링이 평소 사과를 반쯤만 먹고 놔두는 습관과 청산가리가 주입된 사과를 한 입만 베어 먹고 자살한 것에서 애플 회사의 로고가 앨런 튜링의 청산가리 사과에서 로고 모양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었으나 회사는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였다.
다른 설로는 앨런 튜링의 유서는 없었고 그의 책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메모해 놓은 쪽지가 발견되었다. 사망 4일 전에는 차(tea) 파티를 열었고 사망 직전까지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는 주변 동료들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자살로 사건을 종결시킨 걸로 보아 해외로 망명할 걸 두려워한 영국 정보부의 암살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1974년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해독기관에 군 정보요원으로 동참했던 프레드릭 윌리엄 윈터 보섬이 <울트라의 비밀(The Ultra Secret)>이란 책을 출간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앨런 튜링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스티브 호킹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앨런 튜링의 복권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여 2012년 2월 발행되는 우표에 담을 위대한 영국인 10명에 앨런 튜링이 포함된다. 2013년 12월 23일에는 영국 여왕의 특별 사면령으로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영국은 EU에서 탈퇴하고 유로화 대신 파운드를 다시 사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50파운드 지폐 초상 인물로 앨런 튜링을 선정했다. 우리나라 지폐에 나오는 인물을 생각해 보면 영국에서 앨런 튜링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앨런 튜링은 전산학의 아버지, AI의 아버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러한 튜링의 업적을 기려 컴퓨터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1966년부터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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