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누이 家는 인류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천재가문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이 대두되고 우성유전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많은 생물학자들이 앞다투어 이 가문의 유전자를 연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수학과 과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이 가문에 대하여 시리즈로 알아보려고 한다.
16세기 스페인 국왕 필립 2세는 남아메리카, 멕시코, 필리핀, 네덜란드, 이탈리아, 아프리카의 남서부, 인도, 인도네시아 등 광대한 영토를 이루며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아 점령한 왕국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야 했다..
당시 베르누이 가문은 네덜란드의 플랑드르(Flandre)의 앤트워프(현재 벨기에)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은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개신교의 세력이 강하였고 필립 2세는 종교개혁을 부정하며 로마 가톨릭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였다. 당시 스페인의 많은 무슬림과 개신교도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감면해 주었고 개종하지 않은 무슬림과 개신교도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탄압하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이 황금기를 이루는데 많은 공을 세운 알바 공(Duke of Alba)이 네덜란드를 통치하였는데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고, 개신교를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이단으로 보고 개신교도를 탄압하였다. 무자비한 탄압은 오히려 반발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일어난 전쟁은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7년 3월 13일 –1648년 10월 24일)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을 80년 전쟁이라고도 한다.
이 무렵, 개신교도였던 베르누이 가문은 전쟁과 스페인의 개신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를 떠난 후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1620년 스위스 바젤에 정착하게 되었다.
천재 가문으로 불리는 베르누이 가문의 1대를 니콜라우스 베르누이(Nicholaus Bernoulli, 1623-1708)로 보며, 그는 약품 사업을 하였다.
당시 유럽은 1347년에 시작되어 1750년까지 계속된 흑사병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1665년부터 1666년 18개월 동안 런던에서는 흑사병으로 런던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10만여 명이 사망하였다. 약품이 부족하여 민간요법으로 소변 목욕을 하기도 하였고, 고양이가 병을 옮긴다고 하여 고양이 도살 사태도 벌어졌다. 고양이가 사라지자 쥐가 번식하여 페스트가 더욱 기승을 부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니콜라우스 베르누이는 약품 사업으로 막대한 부(富)를 이루었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바젤시 참사회원(參事會員)까지 지낸다.
수학자 야곱은 주목할만한 자손이 없는 반면 동생 요한은 세 아들 니콜라스 2세, 다니엘, 요한 2세는 모두 18세기 수학자와 과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다니엘은 베르누이 가문의 최고의 천재로 비행기가 뜨는 원리인 양력 즉,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주변 압력은 감소한다는 베르누이 법칙으로 유명하다.
니콜라스 2세는 곡선, 미분 방정식, 확률론에 관하여 연구하였으며 성 페테르부르크 학술원에 초빙된 지 8개월 후 익사한다. 확률론에서 페테르부르크의 역설(Petersburg paradox)을 만들었으며, 그 자리를 계승한 동생 다니엘이 연구하기도 하였다.
막내 요한 2세는 법률공부를 하였으나 노년에는 바젤대학교에서 수학 교수를 맡는다. 그의 아들 요한 3세는 19세의 나이에 베를린 학술원의 수학 교수 제의를 받는 등 수학자로 명성을 날린다.
베르누이 가문은 아래 가계도에 보듯 17~8세기 3대에 거쳐 유명한 수학자 여덟 명을 배출하였고, 당시 유럽의 수학 정교수 자리가 10개 정도였는데 여덟 명 모두 수학 정교수를 지냈다. 그중 야곱 베르누이, 요한 베르누이, 다니엘 베르누이는 수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 가문은 17세기 이후 수학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120여 명에 이르며 수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이 대두되고 우성유전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음악 명문 가문인 독일의 바흐 가문, 수많은 학자를 배출한 스위스의 소쉬르 가문과 더불어 당시 생물학자들은 앞다투어 유전자를 조사하고 연구하였다.
<17~8세기 베르누이 가문의 주요 인물 가계도>

17~18세기 수많은 과학자와 수학자를 배출한 베르누이 가문은 플랑드르(Flandre) 출신으로(Flandre) 당시 총독이었던 알바(Alba)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의 바젤(Basel)로 이주한다.
보험의 이론적 발달은 통계학과 경제학에 기초한다. 이러한 발전의 중심에는 스위스의 베르누이 가문이 있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베르누이 가문이 배출한 훌륭한 수학자, 물리학자, 의사, 법률가, 경영가 등이 많았다.
니콜라우스 베르누이의 두 아들 야콥(Jacob)과 요하네스(Johannes) 형제는 모두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고, 과학사에서 형제가 각각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꼽힌 가장 두드러진 예를 제공합니다. 또한 요하네스와 그의 아들 다니엘(Daniel)은 역사상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부자 과학자로 손꼽힙니다. 베르누이 가문의 수학자들의 놀라운 공통점은 그들이 심사숙고한 결과 수학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강요 등의 이유로 다른 여러 전공과 직업을 전전하다가 마치 신에게 이끌린 듯 수학에 닿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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