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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수학 이야기

베르누이 家의 이야기 (요한 베르누이와 로피탈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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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베르누이는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로피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베르누이 家의 이야기 Ⅱ 참고) 이로 인해 요한 베르누이는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 겪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서인지 후에 요한 베르누이는 자신의 아들인 다니엘 베르누이가 사업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기를 원했다. 이 부분은 후에 다시 언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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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피탈이 제시한 조건대로 새롭게 발견한 사실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자신에게만 알려달라는 조건대로 요한 베르누이는 자신이 연구한 새로운 내용을 로피탈에게만 알려야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현재 고등학교 미분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로피탈 정리이다.

요한은 로피탈 정리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로피탈에게만 알려줬다.

로피탈은 1696년 자신의 저서인 Analyse des Infiniment Petits pour l'Intelligence des Lignes Courbes(곡선의 이해를 위한 무한소 분석)』에 로피탈 정리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발표하였다.

요한 베르누이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였고, 훗날 요한 베르누이가 발견한 정리라는 것이 밝혀졌으나 처음에 로피탈이 발견한 정리로 알려져 로피탈 정리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아직까지도 로피탈 정리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요한 베르누이가 스위스 바젤로 갔을 때도 로피탈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지낸 것으로 보아 이 일로 야곱 베르누이처럼 관계를 끊고 원수처럼 지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옛날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3차방정식의 해법을 타르탈리아라고 불렸던 이탈리아 수학자 폰타나가 해법을 찾았지만 카르다노의 꾐에 넘어가 해법을 알려주고 타르타노가 자신이 해법을 찾은 것으로 발표하여 현재까지 3차 방정식의 해법을 카르다노 해법으로 알려져 있다. 

카르타노는 순진한 폰타나를 꼬여 해법을 도용한 것이었지만 로피탈의 경우는 요한 베르누이에게 돈을 지불하면서 조건을 제시한 것이기에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수학계뿐 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조각가 로댕이 자신의 제자인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을 모방하여 출품한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4편에서는 미분의 발견의 원조를 뉴턴이냐 라이프니츠냐로 유럽대륙과 영국과의 다툼으로 인해 오랫동안 학문적 교류가 끊기는 불행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당시 유럽에서 영향력이 컸던 라이프니츠의 신봉자였던 요한 베르누이의 행보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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